ⓟ 거울의 초상화

I LOVE 윌리엄 모리스

MindUp 2008. 9. 19. 22:44

난 윌리엄 모리스가 좋습니다.


 예전에 [공예전문지 월간 Crat]에서 모리스에 대한 대략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있었는데, 문득 놀란 것은 그가 이상적으로 추구하던 사회가 바로 현재 추구하는 사회와 상당히 일치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모리스란 인물이 예술분야만이 아니고 건축, 환경보호운동가, 아나키스트, 정치평론가등 각계 층에서 활발히 그 역량을 펼쳐 천재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가 이상적인 사회를 생각한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라 보았습니다.

 당시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산업화되고 대량 생산화되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그가 바라본 이상은 예술이란 것은 궁극적으로 노동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행위로써 쓸모없는 노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제품은 소비자까지 비인간적으로 만들어 버린다였던 것입니다.

 모리스는 "생활의 모든 외적인 측면을 예술로 확장시켜야한다"라 하여 제한되어있던 예술이란 개념을 좀더 폭넓게 우리에게 제시 해주었습니다. 바로 제한적이고 협소하였던 근대 예술의 개념을 확장시켜나가 근대적으로 갈 수있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예술의 확장 개념은 이렇게 일상용품 및 외적인 사물들이 그 지위를 획득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물론 이상론적인 그의 생각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첫번째로 그가 과거의 수공예에서 피난처를 찾았던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 태도를 발전시켜 나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아름답고 실용적으로 만들어 기능에 부합하는 디자인 등 모리스의 정신은 예술과 산업의 통합을 추구한 후대에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디자인은 노동층들도 일상에서 에술을 느끼는 것이라 주장하였지만, 그가 제작한 아름답고 우아한 가구들과 켐즈코트에서 제작된 화려하나 책들은 오직 부유한 소수층 밖에 구하고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윌리엄 모리스라는 사람을 살펴보면 이상만 추구하는 이상주의자도, 그렇다하여 마르크스 주의자도 아니었습니다. 중세의 예술과 고딕을 찬미하고 따르려하면서도 감상적인 정서보다는 이성적인 지성을 중요시 하였습니다. 당시 사회의 틀안에서 그는 너무 앞선 사람이었을까란 의문이 들었습니다. 19세기에 그가 관심을 보였던 정치, 경제, 예술, 환경, 교육등 너무도 많은 범위들이 현재 우리들이 해결하고 발전시켜나가야할 과제들로 연결되어 있으니말입니다.  21세기라 칭하는 현재, 환경문제가 이슈로 다뤄지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들어서 아름다움이란 일상생활과 사회속에 살아 있어야 하며, 자연스러움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제도에 속하는 것이란 현대 생태주의적 사고를 이미 1세기 전에 나타낸 모리스의 유토피아적 디자인을 쉬이 찾아볼수 있었습니다.
 문득 예술은 Good Degine의 합리적인 요소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름다움뿐이 아닌 경제적, 환경적 등 고루 갖춰야한다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모리스의 사상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의 주장이 말입니다.

 끝으로 후대에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칠수있는 그는 진정한 진보적인 예술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마칠것이 아니라 한발 더 내다보며 진보해나가 2의 모리스가 아닌 후대에 그처럼 여러방면의 평가를 받을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하나 고민에서 그치지않고 끊임없이 성장해야하는데, 나의 태양은 어디에서 나에게 신비로운 광합성을 줄련지...